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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온전한 광복에 이르는 파스카 체험 이루자 - 정중규

정중규 2010. 1. 31. 00:04

‘8·15’ 온전한 광복에 이르는 파스카 체험 이루자

 

 

이른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인 8·15 광복절을 맞아 ‘제2의 건국을 하자.’는 소리가 높고 거리마다 온통 태극기 물결이다. 북한 역시 9·9 인민정부 수립일에 발맞춰 김정일의 주석취임과 극도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을 대규모로 동원해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남북의 이런 단독정부 수립일이 과연 마냥 축하하고 기념만 할 날인가는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날은 일제로부터의 광복 후 우리 민족에게 주어졌던 3년여에 걸친 소중한 ‘해방공간’에서 우리 민족이 하나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아예 따로 살기로 작심을 한 서글픈 날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남과 북 모두에게 주어진 반세기의 비극은 그야말로 ‘절반의 실패’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은 말할 나위도 없고, 상호간 소모적인 적대행위로 지불된 과도한 국방비와 그로 인해 초래된 ‘빈익빈 부익부’나 ‘절대빈곤’ 현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 민초들이 겪은 고통의 총량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결과 남은 것이 작금의 현실, 곧 남은 남대로 IMF로 달러를, 북은 북대로 기아로 식량을 전세계에다 구걸하는 처참한 지경이다.

 

이제 우리 현실의 배후에는 언제나 그리고 그 무엇에나 남북문제, 곧 분단문제가 근본적으로 깔려 있음을 분명히 직시하고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분단을 허물지 않고는 이 민족에게 구원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통일은 무슨 낭만적이고 허구적인 당위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요,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50년에 걸친 분단역사의 희년을 보내고 있는 이 뜻 깊은 해에, 특히 제삼천년기를 향한 대희년을 앞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민족분단의 업보, 그 원죄적 상황에서 탈피하는 하나 됨을 향한 새로운 각오를 분명히 다져야 할 것이다. 이른바 세기말적 대전환기에서 남북 모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지만, 이를 달리 보면 21세기의 새 시대로 거듭나기 위한 해산의 고통이요 절호의 기회라 여길 수도 있다.

 

특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대희년과 함께 새로운 천년기로 넘어가는 지금이 민족현실로나 영성적으로나 일종의 ‘파스카의 때’라고도 할 수 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그야말로 죽음마저 훌쩍 뛰어넘고서 부활의 영광에 이른 주님처럼, 교회는 총체적 위기로 세기말적 절망에 휩싸여 있는 이 민족공동체의 모든 아픔에 빠짐없이 같이하면서 그런 깊은 결합을 통해 기나긴 분단의 터널마저 함께 빠져나가 단순한 ‘제2의 건국’만이 아닌 참되고도 온전한 광복에 이르는 파스카의 체험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어 주어진 교회의 부인할 수 없는 사명이다.

 

 

● 평화신문 무지개 광장 작은 목소리 제492호 1998/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