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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상호부조의 보험 원리

정중규 2011. 3. 2. 22:43

 
 

 

 

 

 

복지는 상호부조의 보험 원리

 

 

 

정중규(대구대학교 재활과학대)

 

 

 전쟁은 인류에게 파멸적 결과를 초래했지만 문명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공헌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지새웠던 군웅할거의 춘추전국시대가 오히려 한의학의 기초를 닦았던 시기였듯이 전쟁터라는 임상실험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학발전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역설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복지에서도 전쟁은 그런 역할을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인류가 겪은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현대 장애인복지의 발전적 토대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세계대전을 통해 무수히 발생한 전쟁 장애인 곧 상이용사들의 복지문제 해결을 국가가 껴안게 되면서 장애인복지도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이 상이용사로 귀가해 각 가정마다 장애인을 가족으로 함께 하면서, 이제까지 장애인문제를 사회시스템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여겨 왔던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시민사회 역시 장애인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특히 산업사회의 병폐들로 인한 각종 재해 및 성인병 발생, 교통사고와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인간환경’이 극도로 악화되어 누구나 언제든지 장애 입을 가능성이 있는 ‘위험사회’가 되면서 ‘모두가 예비장애인’이라는 공감대 속에 장애인 문제가 ‘소수의 그들’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껴안아야 할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장애인복지의 중심도 시설 위주에서 지역사회로 옮겨오게 되었고, 대상화되고 시혜적 차원이 아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사회통합과 주류화를 꾀하는 시민권적 권리회복의 차원에서 장애인복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실 선진사회, 특히 그를 뒷받침할 시민의식은 지극히 ‘영리한’ 현실적 차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숙된 자는 자신이 펼치는 행동이 결국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되돌아옴을 아는 눈을 지녔기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공동선’을 추구한다. 보살핌의 윤리(ethic of care)의 현실적인 효용가치와 인권의 공동체성에 새삼 주목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인간 삶의 공동체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의 복지적 당위성은, 남을 살림으로써 자신도 살리는 상호부조의 보험 원리에 근거한다. 보험이란 누가 피보험자가 될지 아무도 모르나 누구라도 피보험자가 될 수도 있는 산술적 확률의 게임으로써, 그러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각자 적립해 두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당장 혜택을 입는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결국 한 사회의 선진화란 다름 아닌 이런 ‘영리한’ 공동선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이번 아동급식 논쟁에서 드러나듯 시혜적 복지나 선택적 복지의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 성격은 여기에 있다. 복지서비스를 받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누려야 할 권리인 것이다. 그럴 때 OECD국가에다 ‘G20’의 선진국을 꿈꾸는 소득 2만불시대에 GDP 대비 사회복지 예산비율이 후진국 수준인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현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참된 복지는 한 인간으로서 갖고 난 기본적 권리를 스스로 누리도록 구조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으로, 설사 눈에 보이는 ‘주는 자’가 비록 없을지라도 각자가 자신의 몫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익명의 돕는 자’가 되도록 해 복지서비스 혜택자의 인격을 고스란히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다 공동체적 삶의 연대망을 구축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의 전체성을 회복시킬 때, 장애인복지의 공간도 온전히 확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