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봄느낌

‘복지국가 실현’ 정치세력 등장하다

정중규 2013. 12. 15. 21:36

시사IN

 

 

‘복지국가 실현’ 정치세력 등장하다

 

‘복지국가 실현’을 목표로 내세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내년 지방선거에 100명 이상을 출마시켜 현재의 양당 구도 정국에 파열구를 낸다는 전략이다. 안철수 의원 측과도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23호] 승인 2013.11.25 08:56:53
--> -->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11월1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날 저녁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복지국가정치 추진위원회 출범식’에는 나갔다. 그리고 짧지만 강력한 어조로 복지국가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복지국가정치 추진위원회’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가 제안한 바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꿈은 민주당의 꿈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은 무상급식으로 대변되는 보편적 복지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신당 추진설이 도는 안철수 의원도 김한길 대표에 이어 연단에 섰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거론하며 말했다.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은, 가난이라는 문제를 산업화로 극복했다. 자유에 대한 갈구는 민주화로 이뤄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풀기 위해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안철수의 생각>의 주된 내용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1월12일 복지국가정치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안철수 의원(맨 오른쪽)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12일 복지국가정치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안철수 의원(맨 오른쪽)이 축사를 하고 있다.
출범식에는 진보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도 참석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야권이 복지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단결해 여권을 압박하면서 정권교체가 기약된 것으로 보였던 2010 ~2011년 정세가 재현되는 것 같았다.

“거대 양당 구도에서는 복지국가 어렵다”


이 ‘복지국가정치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주체는 복지 부문 싱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다. 그리고 이 단체를 통해 ‘복지국가 실현’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수용하게 된 정치인들이 합세했다. 이들이 복지국가를 정치적 목표로 삼고 직접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 11월12일 행사의 핵심 내용이다.

복지가 건국 이후 최초로 한국 정치의 의제로 떠오른 것은 2010년이다. 당시 ‘건강보험 하나로’(1인당 평균 1만1000원씩의 보험료를 더 내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사실상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만들자는 운동)와 ‘학교 무상급식’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같은 돌풍은 곧이어 ‘선별적 복지’(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복지 혜택을 제공)를 비판하며 ‘보편적 복지’(모든 이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를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강령으로 채택하게 만드는 수준까지 껑충 도약했다. 한국은 경제뿐 아니라 복지에서도 ‘압축 성장’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민주당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며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여권과 보수 언론들은 당초 이런 ‘복지 폭풍’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며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나 표 앞에는 장사가 없다. 새누리당 박근혜 당시 후보는 민주당의 ‘3무1반 무상복지’에 질적으로 그리 뒤지지 않는 ‘한국형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맞바람을 일으켰다. 모든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복지국가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관계자는 민주당이 정치적 성과를 거둔 뒤 초심을 잃고 정치공학 일변도로 빠져들면서 정작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는 사실상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면 많은 재원이 든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번쩍번쩍한 복지공약들을 선언적으로 제시하면서 증세 이야기는 감추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공세적으로 복지국가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 역시 당선되자마자 ‘4대 중증 질환 무상의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반값 등록금’ 등 대표적 복지공약을 단계적으로 철회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지난 8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민주당이 ‘등골 브레이커형’ ‘가렴주구식 세금폭탄’이라고 비난하며 저지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세제개편안의 핵심 내용은, 연소득 4000만~7000만원 계층이 연 16만원 정도의 세금을 더 내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보편적 복지’를 위한 증세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못했던 민주당이 이 정도의 증세를 ‘세금폭탄’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따라서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인사들 가운데는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에 대해서도 ‘복지국가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회의가 확산되었다. 이는 거대 양당을 축으로 형성된 ‘적대적 공생 구도’를 청산해야 한다는 정치 개혁 담론으로까지 연결된다. 지금까지가 이번 추진위의 출범 배경이다.

추진위 일부 인사, 안철수 싱크탱크에도 참여

추진위는 11월12일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위원장으로 의결했다. 추진위원은 전국에 걸쳐 모두 206명이다. 이 중 최소한 100명 이상을 내년 지방선거에 ‘복지국가 정치’의 기치로 출마시키는 것이 단기적 목표다. 수도권과 제주도 등 2~3곳의 시장·도지사 선거에도 후보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양당 구도의 정국에 파열구를 내면서 복지국가 담론과 정책을 정치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다시 끌어올리고, ‘복지국가 집단’을 의미 있는 정치 세력으로 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싱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직접 정치 일선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것은, 그동안 각종 복지 아카데미·시민정치 교육을 통해 정치인들과 복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추진위의 준비위원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준비위원 9명 중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출신은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구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철웅 온라인위원장(충남대 보건대학원 부원장), 안진숙 정책위원(사회복지사) 등 4명이다. 나머지 5명은 정치인으로, 장영기 전 민주당 광명을 지역위원장, 여세현 전 창조한국당 사무부총장, 백두현 전 민주당 경남도당 위원장, 오영훈 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오훈 전 민주당 서울시 강서구을 지역위원장 등이다.

그렇다면 추진위와 기존 정당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추진위는 조직의 목표를 ‘복지국가 정당 건설’로 못 박았다. 그러나 어떤 경로를 통해 정당을 건설하느냐가 문제다. 그래서 안철수 신당과 합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추진위의 일부 위원들은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주당이든 안철수 신당이든 복지국가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복지국가정치’라는 세력을 등장시키는 것이 먼저다. 내년 지방선거에 복지국가 후보를 당선시키고, 이를 통해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지방정부를 바꾸며, 여기서 쌓인 역량으로 양대 정당 구도로 쳐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하나의 ‘세력’으로 확립된 뒤 민주당이나 안철수 신당과의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안철수 의원 측이 추진위에 좀 더 의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으로서는 불안한 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