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한이 한국 사회에
던져준 메시지와 관련해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좌담회가 열렸다. 지난 8월 24일 서울 마포의 주권방송에서의 좌담회 내용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 일시 :
2014년 8월24일
● 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주권방송
스튜디오
● 대담자 :
사회자 A
신부 정중규(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직업재활학 박사) 심현주(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원, 사회윤리학
박사) 이원영(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정치학
박사)
● 대담취재, 정리 :
전대식, 정중규, 김혜형
교황 방한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던진 메시지의 의미
사회자(이하
사회) - 오늘 대담은 교황
방한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던진 메시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번 교황 방한의 핵심적인 주제와 관심은 무엇이었다고
보는지요?
심현주(이하 심) - 교황님이 여러번 언급하셨듯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교황 방한을
처음에는 염려스런 눈길로 바라봤지요. 박근혜 정권이 교황 방한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금년 초부터 시작된 부정선거 규탄하는 천주교 신부들의
시국미사를 중단케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지요.
심 - 저 역시 교황 방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어요. 지난 1984년에 요한바오로 2세께서 방한 하셨을 때, 그 행사의 중심에 한국 천주교의 위세를 과시하는 시성식이 있었잖아요. 이번에도
시복식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천주교 교세를 사회에 알리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하는 염려였지요.
정중규(이하 정) - 그러한
염려는 교황청도 했던 것 같군요. 방한 전에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에 귀 기울여 달라”고 했는데 이는 교황님의 메시지보다 교황 방한을
이벤트로 삼으려는 한국가톨릭교회의 움직임에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 것이지요. 어쩌면 교황청에서 한국가톨릭교회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군요. 교황님께서 한국 땅을
떠나자마자 “유가족 양보” 운운하는 염수정 추기경님의 발언 논란이나 꽃동네 문제 등을 보면 말입니다.
이원영(이하 이) - 교황 방한은 교황청과
한국가톨릭교회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겠지요. 정부 입장에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불법개입 같은 문제로 생겨난
정통성 문제를 커버하려 했고요. 한국천주교 입장에서는 교세 성장이라고 측면을 기대한 것 같고, 바티칸 입장에서는 아시아 방문을 통해 아시아 선교
열기를 일으켜보자는 식의 이해관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놀랬던 것은 이런 이해관계의 프레임을 교황님이 4박 5일 동안 한꺼번에 다
뛰어넘어버렸던 것이죠. 마치 아주 훌륭한 캐릭터를 가진 배우를 무대에 올리는 기획자가 어쩌면 저렇게 그 배우의 캐릭터를 죄다 없애는 기획을
했을까 생각했는데, 그 배우가 서툰 기획자의 프레임을 일거에 뛰어넘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요.
“교황방한 이벤트
삼으려는 한국가톨릭교회의 움직임에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 것”
A
신부(이하 A) - 그래서 교황 방한을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하지요. 방한 일정만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니고 계신 이미지와 가치 체계를 한국에서 드러낼만한 곳이 없게 보여 우려
했었는데, 4박 5일을 지나며 가시는 곳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손길들을 펼쳐가시면서 그런 우려들을 완전히
씻어버렸지요.
정 - 장애인당사자인 제겐 방한 일정 가운데
꽃동네 방문이 거슬렸지요.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과 반대운동도 펼쳤고, 교황님께 직접 서신을 전달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역시 교황님이
꽃동네에서 센스있고 순발력 있게 “자선이 아닌 인간화를 도모하라”는 ‘돌직구’로 날린 꽃동네 개혁 발언 때문에 전화위복이 된
기분입니다.
A - 교황님의 행보
안에서 드러난 특징 중에 하나가 교리나 도그마에 연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고 진실규명 위해
나무십자가를 지고 800km 가까이 도보성지순례 마친 이호진씨에게 직접 세례를 베푼 것이지요. 적어도 6개월 예비자 과정을 거쳐야 세례를
받는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또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4박 5일 동안 매일 만나시고, 명동성당에서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도
강정 밀양 주민들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초대해
가난한 사람을 보듬어 안고 가시는 교회의 큰 어른 모습에서 우리가 지닌 고정관념들을 깨트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셨다고
봅니다.
심 - 거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개혁성과
리더십을 봅니다. 인간 중심이라는 사상은 과거 교황님들도 강론이나 글을 통해서 드러내셨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런 생각을 말과 행동을 통해서
3박자가 일치된 행보를 고집스러우리만치 일관성 있게 보여주셨다는 점에서 개혁적 리더십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 교황 방한의 화룡점정은 역시 바티칸으로
돌아가시는 기내에서 밝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세월호 유족들을 추모한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교황님을 향해
누군가가 던진 ‘중립을 지켜야 되니까 떼는 게 좋겠다’는 조언에 대한 답변인데, 이 단호한 한마디로 교황님께서 왜 한국을 방문하셨는지를 스스로
드러내신 것이 아닌가 싶군요.
“교황 방한의
화룡점정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A - 실제로 겸손과 섬김의 자세를 꾸준히
보여주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지도가 60% 이상 엄청 상승했다는데, 이것이 가톨릭 교세 성장에 힘을 보탤 것인지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요?
정 - 흔히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대한민국이 달라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교황 방한 이후 한국가톨릭교회 역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지요.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 사회 전반에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듯이, 10% 신자율에 500만 신자수를 자랑스레 내세우는 성장주의와 교회 안마당 아니 골방마저
상업주의에 점령당해 있는 교회 현실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신드롬’도 선교 깃발로 삼기에 앞서 교회 쇄신의 바람이
되어야겠지요.
“얼마 전 사제들이 모여 ‘교황 방한 이후에 한국가톨릭교회에 변화가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했더니 공통적인 답변이 교회 어른들은 거의 변하지 않을 거였지요. 단지 교황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고 하는 메시지와 관련해
주교들이 무슨 얘길 하지 않는다면 사제들 안에서 교회개혁을 위한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가지 않는다면 신자들이 소리칠 거다. 신자들이
소리치지 않는다면 돌멩이가 일어나서 소리칠 거다. 그 소리마저 교회가 듣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들로부터 외면 받게 될 거고 외면 받게
되는 순간 한국가톨릭교회는 생명력을 잃을 거다.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사회 -
교황님 역시 이번 방한으로 가톨릭 교세를 키우겠다는 의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착한 목자로서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슬퍼하는 사람들 손잡아주고 위로해주시는 그 진정성은 그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진실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 뿐, 쇼맨십 한 것은 아니란 것이지요. 그래서 우선은 교회의 어른들이 그런 교황님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주교님들이 따르고 그것을 사제들이 따르고 다시 신자들이 훌륭한 사제들을 보며 따르는 것이 좋겠지요. 이제는
교황님께서 우리들에게 준 과제를 실행할 때가 됐다고 봐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교황님은 4박 5일간 매일같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해주고 또 메시지를 주고 떠나셨는데, 정작 이것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가톨릭
주교들이 아니고 타종교 지도자들이었어요. 교황님께서 가시고 나서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하고 있던 김영오씨를 만나러 간 것은 바로 불교, 천도교,
개신교 그리고 유교 등 4대 종단 지도자들이었어요. 그 다음날에야 그것도 자발적이 아니라 ‘지금 대통령하고 우리를 중간에서 역할 할 사람이
없는데 당신이 해달라’는 유가족의 요청을 받고 염수정 추기경이 방문했지요. 이처럼 이번 교황 방한에서 가장 큰 효과가 난 것은 가톨릭교회 내부가
아니라 오히려 바깥사람들이었습니다.
정 - 염수정 추기경 방문은 ‘뒷북방문’인데다,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내놓은 기도문이 “마음이 아프시면 마음에 그대로 담고 계시라”는 야릇한 선문답이어서 실망만 안겨주었지요. 이는 4박 5일의
짧은 방한 기간에도 고통 받는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고 가슴으로 위로를 건넨 교황의 모습과 더욱 대비되었지요. 이런 흐름의 한국교회가
‘프란치스코 신드롬’만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입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A - 얼마 전 사제들이
모여 ‘교황 방한 이후에 한국가톨릭교회에 변화가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했더니 공통적인 답변이 교회 어른들은 거의 변하지 않을 거였지요.
단지 교황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고 하는 메시지와 관련해 주교들이 무슨 얘길 하지 않는다면 사제들 안에서 교회개혁을 위한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가지
않는다면 신자들이 소리칠 거다. 신자들이 소리치지 않는다면 돌멩이가 일어나서 소리칠 거다. 그 소리마저 교회가 듣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들로부터 외면 받게 될 거고 외면 받게 되는 순간 한국가톨릭교회는 생명력을 잃을 거다.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염수정 추기경
방문은 ‘뒷북방문’인데다,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내놓은 기도문이 “마음이 아프시면 마음에 그대로 담고 계시라”는 야릇한 선문답이어서 실망만
안겨주었지요.”
심 - 저는 교황 방한을 통해서 제도권 교회가
어떻게 변화될까라는 데엔 관심 없어요. 단지 교황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면 역시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쪽이 아닐까 싶어요. 한편으로 교황님의
메시지인 ‘가난한 사람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사회’라는 말씀이 과연 우리 교회 안에서 실천적 활동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듭니다.
한 여당의원이 교황님의 행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란 부탁을 했었는데, 역설적으로 이 말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한다’라는 교황님의
말씀이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죠. 이 사회 안에서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 준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불쌍해서나 성서에
나온 대로 예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 아니라는거죠. 오히려 교황님이 이번에 밝히셨듯이 그것은 그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정의의 일을 하라는 얘기고 그런 활동은 결국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누가 이 부분까지 파격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행보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근본적인 변화는 실상 현재의 교회 안에선 어렵다고 보는 것이죠.
A -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지만 주변으로부터
서서히 시작될 수도 있을 거다 이렇게 보는 것인지요?
심 - 흉내는 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나 반응에 있어서 교회 내의 일부 신자들이 교황님 흉내 낸다며 그들에게 자선행위 한다는 그런 정도가 아닐런지요. 하지만 교황님
메시지를 정확하게 받아들였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평등성을 지닌 동등한 시민으로써 그들이 당연히 가져야 될 권리를 나눠주는 정치적인 면까지
실천하겠다는 것으로 나아가야겠지요.
A - 교황님 발언에서도 자선행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히 나왔었죠.
이 - 꽃동네에서 평신도 사도직 지도자들 만났을
때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저는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일에 직접 참여하는 여러 단체들의 활동을 높이 치하합니다. 이런
활동은 자선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도록 격려합니다.’ 이런 말씀인데 여기에선 보다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셨지만, 다른 자리에서 인간 증진에 관해 구체적으로 뭐라 하셨냐면, 물질문명을 뛰어넘고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더 거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독재에 대해 언급도 하십니다. 교황님은 가난에 대해서 아주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겪고 있는
가난의 문제는 어떤 특정한 개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고 구조의 문제라는 인식이 항상 전제되어 있어요. 마치 브라질의 카마라 대주교의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하면 성자라고 하지만 가난을 만드는 구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공산주의자라고 한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결국
교황님의 발언은 ‘부당하게 가난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맞서서 싸워야 된다’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오웅진
신부는 자신을 드높이기 위해 교황님을 초청했지만, 역설적으로 꽃동네의 문제점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꼴이
되었지요.”
정 - 꽃동네 방문을 반대했던 당사자로 교황님께서
꽃동네에서 어떤 발언을 하실까 주목했지요. 6월에 왔던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토소 대주교께 교황님께 전해달라 했던 “꽃동네에서 ‘수용
장애인의 사회통합에 오웅진 신부가 나서라’는 강론을 해달라”는 부탁이 받아들여질 것인가도 궁금했고요. 그런데 ‘자선사업에서 머물지 말고 인간
성장과 인간 증진을 도모하라’는 교황님의 말씀은 참으로 반가운 것이었지요. 물론 이 발언은 꽃동네 시설 방문 때가 아니라 평신도들과의 만남에서
나온 것이지만 말입니다. 사실 교황 방한을 며칠 앞두고 청주교구 교황방문준비위원회에서 “교황님은 장애인을 만나는 자리에선 인사말 없이 오직
행동만 하실 것”이라고 밝힌 것은 뜬금없는 것이지요. 왜 꽃동네 ‘시설 방문’ 때만 교황님 연설이 없었는지, 누가 교황님의 발언을 막았는지, 그
후 평신도와 수도자 모임에서야 간접적으로나마 꽃동네 문제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막이 궁금합니다. 어쨌든 교황 방문지 중 유일하게
논란을 부른 꽃동네에서 오히려 꽃동네 개혁의 불씨가 지펴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며, 오웅진 신부는 자신을 드높이기 위해 교황님을 초청했지만,
역설적으로 꽃동네의 문제점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꼴이 되었지요.
A - 교황님이 뚜렷이 보여주신 것 하나가 바로
겸손이죠. 1등석 좌석을 물리치고 비행기를 타고 오셨다는 것이나, 카퍼레이드 도중 내려오셔서 세월호 유가족 손을 잡아주시거나 장애인들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역대 교황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인데 이런 이미지의 임팩트는 사람들에게 아주 강하게 인식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또한
아주 짧은 언어에 모든 것을 담는 그런 언어들을 쓰시는 것을 보면 언어 감각 역시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직설적으로 비판
하시는데 직설적으로 비판 하는데도 사람들에게 거슬림을 주지 않으셔요. 거부감을 주는 말투가 아니면서 사람들을 공감시키게 하는 언어, 언어의
예술사 같아요. 교황님의 방한 발언 중 최고의 돌직구가 ‘고통 앞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인데, 우리가 그 말 몰랐나요? 알지요. 아는데 이
시점에 이 말씀이야 말로 최고의 화룡점정이다. 이런 점이 교황님께 배울 점이라고 봅니다.
사회 -
교황님께서 ‘나는
작은 차를 타겠다’며 방한 기간 내내 소울차를 이용하셨는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 역시 크지요.
이 - 소울, 영혼이 있는
교황님이시지요.
사회 -
그렇습니까?(일동 웃음)
A - 종교 지도자들이 존재감이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의 현장, 고난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 서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교황 방한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실제 현장
안에서 현장과 부합되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것이죠. 세월호 유가족도 한 번도 아닌 여러 차례 만나신 것도 그러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는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쓰신 편지도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감동시켰습니다.
이 - 교황님께서 현장에서 하신 발언이라
하셨는데, 어쩌면 청와대도 하나의 현장으로 생각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교황님의 청와대 연설의 핵심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인데, 이 역시 청와대를
하나의 그 현장으로 여기신 발언이라 여겨집니다.
A - 그 뒤로 민주주의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도 하셨잖아요.
이 - 네, 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A - 그러니까 그 언어는 너무너무 부드러운데 그
메시지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메시지란 말이에요. 실제로 민주주의를 강화시켜야 된다라는 말씀이 청와대 현장에서 터져 나왔다는 것은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라는 자부심 앞에서, 아직 너희들 부족한 게 너무 많아, 민주주의를 더 강화시켜야 돼. 현 정부 하는 짓을 보면
이게 지금 민주주의라고 내놓을 수 있는 거야? 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 있잖아요.
이 - 그렇죠.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교황님께서 정확하게 집어서 말씀한 것이죠. 특히 소통에 대해선, 김영오씨가 지금 청와대에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게 면담하자는
것이잖습니까. 어찌 보면 세월호 유족들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과 대통령이 소통해야 된다. 이런 뜻으로 하신 말씀으로 해석
됩니다.
A - 하지만 교황 방한 이후가 염려스러운 것은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이 한국천주교회가 보수적으로 바뀌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데, 그 첫 사건이 1987년 가톨릭교회 안에서
개혁적 성향을 주도했던 전국가톨릭농민회하고 전국평신도가톨릭협의체 같은 전국기구를 해체시킨 것입니다. 그런 보수적 흐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봐요. 최근 시위현장에 가톨릭 어버이연합 격인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 이른바 ‘대수천’ 같은 단체들이 나타나고, 각 본당의 사목회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로 이뤄져 있고 그들이 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따라서 앞으로 가톨릭교회 내에서 개혁적 성향의 평신도
운동이 일어나기는 지금의 조직체계 속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수적 가톨릭교회가 최근 성장하고 있다는데 이유가
뭘까요?
사회 -
그 성장의 뜻을
어떻게 보느냐인데, 지금 한국가톨릭의 교세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교회의 재력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생활이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의료 시스템도 교구마다 잘되어있어 성직자들이 아프면 가톨릭 재단 병원에서 무료 진료 받고, 신부들이 은퇴하고 나면
생활보장이 제도적으로 아주 100% 완벽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심 - 그래서 교황님께서 한국 주교단을 만났을 때
한국교회가 세속화 되어 있다고 정확하게 지적하셨고요. 저는 교황님께서 언급한 제도권 교회만이 아니라 제가 속한 가톨릭 재단 학교들이 얼마나
기업화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제도권 교회의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이상으로 가톨릭 재단의 학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교황 방한의 한 목적이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이었잖아요. 이 청년들에 대한 애정과 기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인 것이죠. 청년들에 대한
교황의 기대에 가톨릭 재단의 대학들이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회의가 듭니다.
A - 교황님의 메시지 특성은 자명함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단호하게 무한경쟁과 물질주의에 맞서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고 있는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있는 비인간적인 이런
경제모델을 거부하기를 빈다. 한 종교의 수장이 이런 메시지를 과연 던질 수 있을까? 대단히 이례적이지 않아요?
이 - 그렇습니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선 그
문제에 관해선 굉장히 단호하신 것 같아요. 아예 신자유주의 모델을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거부해야 한다는데 방한 때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언급하셨지요.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주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말씀하셨으면 그냥 애둘러 말씀하셨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바로 이어서 문장이 뭐였냐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셨거든요.
A - 저는 그래서 두 지점을 발견합니다. 우선
교황님은 공감능력이 뛰어나시다. 그 공감능력을 근거로 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능력 또한 뛰어나시다. 그러니까
공감능력에다 비판능력이 결합되어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면서도 강한 메시지로 드러난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심 -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지신 공감능력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받는 애정의 진실성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두 번 얘기하면 숨찰 정도로 강한 감동을 주고 있지요. 교황님께서 얘기하셨던 신자유주의의
문제라든가 경제구조와 정치구조의 문제는 이미 역대 교황님들께서 다 말씀을 하신 거예요. 다만 이런 것들을 문헌상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진실성을
가지고 계신 분한테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게 더 큰 울림으로 와 닿는 것 같아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지신 공감능력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받는 애정의 진실성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두 번 얘기하면 숨찰 정도로 강한 감동을 주고
있지요.”
정 - 교황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의 한 구절 “교회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에서도 드러나는 그분의 실천력에서 그 진실성의 감동이 울려오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온전히
실천에 옮기시려는 교황님의 낮은 데로 향하는 마음 자세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체질화 되었으면 합니다.
사회 -
교황님이 우리
한국에 오셔서 드러내신 예언자적 특성을 우리가 놓쳐선 안 된다고 봅니다. 예언자는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끝까지 중심을 잡고 하느님
안에서 풀려는 자인데 교황님이 당당하고도 거침없이 행보하시는 것은 하느님과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죠. 그래서 청와대에 가셔서도 사전에 교황청과
청와대 간에 메시지 조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해버렸어요. 또 저희 사제들에게도 성직주의에 얽매이지
마라. 주교님들에겐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야 한다. 보통 어른들은 상대방에 맞춰서 가려서 표현하는데 교황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거든요. 아주
적나라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교황님께 배워야 할 점은 우리 주교님들이 부자들 눈치 보지 말고 세월호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발언하고
교황님처럼 ‘고통 받는 자에게 중립이 없다’ 그런 예언자적인 모습을 지니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에 또
하나의 교훈적인 모습 중의 하나가 교황님께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전에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서 노란리본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것을 일반 옷도 아닌
미사 드리는 제의에 달았어요. 이것은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거예요. 교황님의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컸던가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고통 받는
자에게 중립이 없다’ 그런 예언자적인 모습을 지니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다
교황님께서 노란리본을 그날만 달지 않고 출국 때까지
달고 가셨답니다. 유족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겠다. 진정성을 보여준 거죠. 그런데 한국 주교님들은 그 당시 세월호 리본을 단 자가
아무도 없었어요. 이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 먼 이국만리에서 여기까지 오셔서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시는 그 모습, 근데 바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는데 불구하고 주교님들은 강우일 주교님을 비롯한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손도 잡아주지 않았어요. 너무나 부끄러운
한국교회 모습입니다. 이제 한국 주교님들이 지금이라도 회개해서 교황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받아 이어가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황님께 ‘우리가
당신이 우리들에게 준 과제를 잘 수행했습니다’라고 보고 드려야 해요. 그래야 이번 교황 방한의 열매가 잘 맺어질 것이라고 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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