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늦은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증장애인 '보호와 옹호(P&A)' 시스템
방안 연구 토론회. |
수십 년간 시설 원생에 대한 폭행과 시신 방치 등이 자행된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과 같이 학대, 방임 등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최근에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장애인에 대한 권리 보장과 인권침해 예방을 위해 장애인 권리옹호체계가 어떤 식으로
제도화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중증장애인 ‘보호와 옹호(P&A-Protection and Advocacy, 권리옹호)’ 시스템 방안 연구
토론회가 지난 4일 늦은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장애인 권리옹호제도화를 위한 공동대책위 등의 주최로 열렸다.
이날 발제 및 토론자로 나선 장애인·인권단체, 정부 관계자들은 장애인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권리옹호체계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법 제정, 권리옹호 주체 등 구체적으로 권리옹호체계가 어떻게 제정되고 운영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미국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를 발제한 조한진
교수. | 미국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발제를 담당한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미국
권리옹호체계의 성격을 설명하고, 한국에 권리옹호체계가 도입된다면 기존 법에 미국 권리옹호 프로그램을 반영하고 비영리민간단체가 권리옹호기관을
담당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미국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는 PADD(발달장애인을 위한 보호·옹호) 등 8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 권리옹호, 장애인복지 서비스 민원 해결, 보조기기 서비스 지원, 선거권 보장 등 장애인의 권리를 여러 측면에서 보호하고
있다.
미국의 권리옹호기관은 장애인 학대·방임·권리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접근 권한, 장애인 당사자를 대신해 소송할
권리(원고적격) 등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연방 정부는 권리옹호기관을 지원하고 감독하지만, 각 기관의 자율성 또한 보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미국의 권리옹호제도를 도입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우선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호·옹호(PADD),
정신장애인을 위한 보호·옹호(PAIMI), 개인 권리를 위한 보호·옹호(PAIR)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PADD의 경우 제정 추진
중인 발달장애인법에, PAIMI는 정신보건법에, PAIR은 장애인복지법에 그 내용을 담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권리옹호기관은 중앙정부 산하 조직이나 지방자치단체 기관보다는 민간조직, 특히 민간 비영리단체가
적절하다”라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다 보면 공무원 조직과 맞설 수도 있는데, 중앙이나 지방정부 조직이 권리옹호기관이 되면 다른 정부기관을
감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제도화 방안에 대해 발제한 법무법인 지평 임성택 변호사는 한국에서 시행 중인 권리옹호체계를
점검하고,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를 제도화하기 위한 법 제정, 조사·조치 권한 부여, 시설에 대한 항상적 감시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인권위는 장애인 권리옹호를 위해 기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장애인인권조례를 통해 만들어진 각
인권센터는 조례에 의한 것이기에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 또한 권리옹호기관 자체가 조사권한, 법적 권한이 없는데다가 재정이 없다
보니 상근변호사도 없다.”라면서 “따라서 법률에 근거를 둔 권리옹호체계가 필요하다. 법률은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권리옹호 내용을
담거나 기타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한국에서 시행 중인 아동, 노인, 학생 권리옹호체계를 비교해 설명하며,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제도화
방안을 제시했다.
임 변호사는 “아동·노인보호전문기관은 민간위탁형 보호기구이지만, 학생인권옹호관은 공공형 모델이다. 두 경우가
장단점이 있어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라면서 “다만 민간위탁의 경우 민간의 헌신성, 전문성, 역동성, 자발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조사 단계에서
저항에 부딪히기 쉽다. 따라서 공공형 모델을 기반으로 하되 민간위탁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장애인 특성상 장애인 인권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옹호체계가 되어야 하고 권리옹호체계 기관에
조사와 조치권한이 있어야 한다”라면서 “권리옹호체계가 제대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복지시설에 대한 항상적 감시가 필요하다. 시설중심의
복지정책에서 복지시설이 권리옹호체계를 의식해 인권침해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복지시설을 감시하는 것이 담보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국가기관 관계자들은 권리옹호제도 필요성에 대해서 동의하며 강력한 권한을
권리옹호기관에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례를 통해 권리옹호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박김영희
사무국장.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에 근거해 활동하는 장애인 인권단체가 인권침해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 조사와 조치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를 통해 권리옹호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장차법에 따라 정당한 편의제공 모니터링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 대해
긴급구제가 필요한 경우 장차법으로 구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라면서 “장애인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권리옹호체계가 있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박김 사무국장은 “미신고 시설에서 살던 장애인 당사자가 비인간적 환경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제보자를 통해서
확인했지만, 우리는 접근권한이 없었다. 시설에 거주하던 노인의 열악한 상황을 알게 되어 노인전문기관과 함께 접근해 시설 거주자들을 탈출시킨
사례가 있다.”라면서 “만약 우리가 권한이 있었다면 조금 더 빨리 장애인 당사자가 시설을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조문순 센터장도 조례에 근거해 만들어진 장애인 인권센터 등 권리옹호기관에
어떤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기에 명확한 권리옹호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센터장은 “조례에 의해 장애인 인권센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명확한 규정이 시급한 실정”이라면서 “장애인
인권센터에 사건이나 피해자에 대한 접근권한이 없고, 피해자 지원에 대한 제도적 부분도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박인용 공동대표는 차별적인 국가 제도와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적인 권리옹호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밝히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권리옹호체계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박 공동대표는 “국가 제도와 사회가 차별적이기 때문에 차별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데 이에 대한 대응도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방임과 인권침해는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운 장애인은
이중 침해를 당하고 있다. 이들이 자기옹호를 할 수 있는 권리옹호체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박 공동대표는 “시설거주장애인 중 70%가 발달장애인"이라며 "권리옹호체계에서 시설 접근 권한 부여, 탈시설 지원,
변호인력 지원과 같은 특별조치가 필요하며, 특히 시설 내의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권리옹호를 규정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라고
제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법제개선팀 조형석 팀장은 인권위가 권리옹호에 미흡하기에 권리옹호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권리옹호체계를 수립할 때 인권위와 연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조 팀장은 “인권위가 권리옹호에 있어 미흡한 것은 사실이기에 권리옹호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라면서도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에서 확장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권위와 연계성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조 팀장은 “권리옹호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인권위와 연계성을 강화해 현장조사는 권리옹호기관이, 광범위한 조사는 위원회가
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권리옹호체계가 어떻게 법제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을
달리했다.
먼저 장추련 박김영희 사무국장과 인권위 조형석 팀장은 장차법에 권리옹호체계를 반영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박김 사무국장은 “장차법만으로는 구제조치가 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는데 장차법 안에 권리옹호체계가 있다면 적극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면서 “장차법을 제정할 당시 장애인들이 바랐던 것은 권리옹호였다. 그렇기에 장차법 안에 권리옹호체계가
만들어져 장차법이 장애인 권리옹호와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조 팀장 역시 “권리옹호제도는 별도입법을 통하거나 장애인복지법 또는 장차법에 근거할 수도 있지만, 일단 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면서도 “다만 장애인복지법에 권리옹호체계가 포함되면 학교가 법률 담당사항이 아니기에 학교에 대한 조사가 어렵고, 또 정신보건법이
따로 있어 정신보건시설을 조사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장차법에 담기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당사자 지원법률에 권리옹호체계를 담아내고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운동조직이 권리옹호체계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는 박인용 공동대표. | 박인용 공동대표는 발달장애인법과 같은 당사자
지원법률 안에 권리옹호체계를 담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법 제정 이후에도 장애인운동조직 등이 권리옹호체계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공동대표는 “가능한 한 당사자 지원법률 안에 권리옹호체계를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발달장애인법에 있는
권리옹호체계를 법 제도를 통해 조속히 시행했으면 한다”라면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가 장애인운동을 통해 마련되었는데, 법으로 제도화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므로 당사자, 민간 운동조직이 권리옹호체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권리옹호를 공공기관이 담당할 것인지 민간기관이 담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토론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탈시설정책위원회 박숙경 사무국장은 민간기관이 공공기관을 조사할 때나 비슷한 서비스 제공기관을 조사할 때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공공기관이 권리옹호를 담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문화에서 민간기관이 정부를 견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에 공공형을 중심으로 권리옹호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라면서 “또한 권리옹호기관을 단체나 기관이 위탁받을 때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져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비슷한 서비스
제공기관이 권리옹호를 맡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문순 센터장은 민간기관이 권리옹호를 맡을 때 역동성, 서비스정신 등 긍정적 효과가 있기에 민간기관이 권리옹호를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센터장은 “권리옹호는 민간영역에서 맡아야 역동성과 서비스정신이 권리옹호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민간영역에서 일어나는 반목과 갈등에 대해서는 평가를 통해 개선해나가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는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인권단체 회원, 전문가, 국회의원 등 16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었다.
토론회를 주관한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행복포럼, 공동주최단체인 안철수 의원실, 장애인 권리옹호제도화를 위한
공동대책위 등은 이날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장애인 권리옹호체계 법제화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토론회에 앞서 참가자들이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안철수 의원(무소속)이 인사말을 통해 이날 토론회 내용을 권리옹호체계 법제화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
▲많은 중증장애인이 토론회에 참가했으나 별도 좌석이 없어 대회의실 강단 앞에서 토론회를 들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