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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안마당과 골방까지 점령한 상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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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중규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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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위기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MB와 국방부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어느덧 실체적 진실이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천안함 침몰 참사에 희생된 승조원들과 어민들, 그 유가족들이 처해 있는 참담한 상황은 지금 우리 사회의 어수선한 현실 그 축소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사회의 근본 토대가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집권 단 2년 만에 이 사회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노라는 MB정권의 퇴행적 정치놀음이 가져온 결과가 결국 이런 것인가.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 자체가 타락한 가치체계가 휩쓸고 간 혼란의 거리였다.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뒤엉켜 쌓아올린 요지부동의 거대한 바벨탑과 그 그늘 아래 빚어진 온갖 병폐들로 뇌사 지경에 이른 아픔을 본다.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느님을 알아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데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 간다.”(호세 4,2~30)
진정 우리 사회의 내일은 절망인가. 이 사회가 참으로 쫓아야 할 올바른 방향은 과연 어디인가.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우리 교회의 할 바는 무엇인가. 사회복음화와 선교의 시대적 비전의 지평은 바로 여기서 포착된다.
성직자가 교회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시대착오적인 교권만능주의 현실은 또 어떠한가. 성직자가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 되기에는 이미 광폭(廣幅)·전문(專門)·심대(深大)해진 이 시대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야말로 평신도의 몫인 것이니, 그들이 교회의 중심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치 교회의 길이 오직 그것인 양,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구별 짓는 성속이원론에 근거하는 계급주의만 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교회의 미래에 적신호가 켜지는 염려스런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천주교회는 산업화와 더불어 급격한 교세 신장을 이루면서 대도시 중심의 대형화와 그에 따른 중산층화의 흐름을 타게 된다. 이런 물량적 확대가 종교의 참 모습을 일그러뜨리고 영적 빈곤과 외화내빈의 각질화를 초래함은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이다. 작금의 냉담자 증가현상은 교회 전반의 역동성 상실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의 교회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실천적 유물론을 주도적으로 전파하는 또 하나의 매개체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국민 수보다 신자 수가 더 많다는 이상스런 ‘종교의 나라’는 극도의 유물론적 세속주의로 치닫는 가치혼란의 와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땅에서의 교회 역할이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 외칠 수 있는 입술을 지닌 예언자의 것이어야 하고, 그런 예언적 영성의 회복이 복음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회복음화의 한 길이다.
인간은 구원되어야 하고 인간사회는 쇄신되어야 한다(사목헌장 3). 따라서 ‘인간사의 전문가’인 교회는 사회의 제반현실 곧 인간문제에 대해 결코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세대를 통해 그 ‘시대의 징표’를 복음의 빛으로 밝혀 참되게 드러내 주어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교회는 마땅히 그분께서 그러셨듯이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더할 수 없이 깊은 결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그렇게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세상 한복판 가장 낮은 곳 진창에로 강생·육화할 때 이 사회의 복음화도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정중규 / 다음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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