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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창립 취지문 - 정중규

정중규 2010. 1. 30. 22:48

부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창립 취지문

 

 

이 땅의 장애우가 40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은 우리나라 인구의 약 10%가 되는 수치로서, 내 주위에 ‘열 명 중 한 명’은 적어도 장애우라는 말이 됩니다. 이렇듯 장애우의 문제는 바로 내 이웃의 문제이며 결국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세계 제일의 교통사고, 산업재해,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피폐되어가는 도덕성 등 ‘인간환경’이 극도로 비인간화와 반생명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이 불안한 사회 속에선 우리들 모두가 언제든지 장애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장애우 중 80% 이상이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장애우의 문제는 더 이상 ‘소수의 그들’이 아닌 우리 사회 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400만 장애우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일단 장애우가 되면 사회에서 불량품으로 분류되어 재활을 위한 치료는 말할 것도 없고 배움의 기회조차 차단당하며 심지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시피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반인 위주로 되어있는 모든 편의시설과 건물구조, 계단과 문턱 이러한 것들이 장벽이 되어 사회에의 접근을 근원적으로 막고 있으며 무엇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이중삼중의 아픔도 있습니다. 이처럼 부지기수로 지닌 ‘우리 사회의 장애들’ 앞에서 장애우들은 오히려 이 모든 걸 마치 한 개인의 팔자나 자신의 잘못으로 치부하며 자포자기의 삶을 영위하다 보니 어느덧 ‘타의반 자의반’으로 우리 사회의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전락해 버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이건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마저도 대부분 동정적이고 시혜적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 위주의 정책적 기조 앞에 장애우 정책은 국가시책에서 언제나 꼴찌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혹 있다고 한들 그것은 전시행정 수준에 머물렀으며, 이에 대한 장애우계의 대응 역시 조직적이거나 이론화되지 못한 주먹구구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또한 이제껏 장애인 단체들 자체로서도 천편일률적이고 일회적인 이벤트 사업에만 매달려온 것이 실상입니다.

 

따라서 장애우 문제를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면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고찰을 통해 이론화하여 사회정책으로 일관되게 정착화시켜 나아가는 장애인계의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 연구소의 설립 목적입니다. 장애우 문제 해결의 주체는 역시 장애우 스스로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역량의 조직화에도 힘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바뀌어져야 합니다. 고도의 경제 성장 정책의 그늘진 언저리에서 고통 받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적 요구와 인간다운 삶에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두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이 향유되고 ‘인간환경의 인간화’가 이뤄진 성숙된 사회로의 출발점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실 이 땅의 장애우의 모습은 다름 아닌 이 사회에서 고통 받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의 거울입니다. 그러기에 본 연구소는 장애우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고통 받는 사람들 모두와 선의의 연대를 하면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함께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 부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19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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