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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맞으며 - 정중규

정중규 2010. 1. 30. 22:50

사순절을 맞으며

 

 

‘철새들의 낙원’ 을숙도가 언제부턴가 ‘개발의 천국’이 되고 있다. 탁 트인 하구언을 앞에 두고 말라버린 갈대 늪과 망가진 나무다리는 개발의 허구성과 폐단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진정 무엇을 얻기 위한 개발이며, 우린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일까. 잃어가는 것은 새들의 안식처만이 아닌 우리 마음의 안식처, 그로 인한 심성의 황폐화이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끝은 대개 문명의 껍데기로 화석화 되고 만다. 만리장성이나 거대한 피라미드 같은 조형물에서 우리는 박제된 인간 욕망의 바벨탑을 본다.

 

과연 문명의 죄악은 ‘영원에로 닿는 다리’를 이처럼 절단해버린 것, 그건 희망의 상실이요 꿈의 붕괴였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가 단절된 그곳은 땅의 황폐화 이상으로 삭막하기만 하다. 영원성에 닿지 않는 인간의 삶터 위에 영원하게 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탯줄을 끊겨버린 태아처럼 영원의 숨결이 떠나버린 그 곳은 죽음의 잿더미일 따름이다.

 

사순절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사이의 깊고 넓은 간격을 메꾸어 나가야 하는 때.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는, 곧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듣고도 깨닫지 눈과 귀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귀로 바꾸어야 하는 시기이다. 하여 ‘빵과 돌’, ‘생선과 뱀’, ‘달걀과 전갈’을 구별할 수 있는 영혼의 순수함 곧 마음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아의 분열을 극복하여 헷갈림 없이(1코린 7,34) 하느님 안에서 한 마음이 되는 그러한 순결함과 무욕의 영성 속에서 우리는 자기 안에 깃든 내적 역량(은총)을 재발견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선과 악의 힘겨룸 속에서도 하느님 안에 한 마음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바로 사랑뿐이다. 사랑만이 갖가지의 모든 분열과 간격을 뛰어넘을 수 있다. 진정 사랑의 가슴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다 품을 수 있으며 결국엔 그 모든 것보다 한 치 더 크기만 하다. 온갖 좋은 것 다 가져다 주는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온전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순절은 또 하나의 대림절. 40일에 걸친 몸부림의 아픔은 부활의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 각자의 처지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며 기쁘게 살아갈 때, 참으로 사랑에 기꺼이 죽고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힐 때 우리의 삶엔 부활의 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으리라. 광야가 초원이 되는 부활의 봄을 향한 춤추는 파스카의 축제 바로 그날에.

 

 

● 천주교 부산교구 지체장애인선교회 회보 모둠사랑 제28호 199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