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시대’에 ‘사람의 빛’을 증거하자
위령성월은, 우리의 삶은 결코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것은 또한 나의 삶이란 ‘나’만의 삶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곧 영원에서 영원으로 지상에서 천상에까지 이르는 광대하고도 심오한 시공(時空)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진 생명 그물 속의 그것임을 웅변해준다. 그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은 영원성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 d니라 거짓과 불성실, 궁극적으론 죄악 그런 것이리라. 오히려 죽음의 빛깔은 삶의 빛깔, 삶의 충실성 그만큼이다. 그럴 때 죽음은 더 이상 칙칙한 것이 아니라 투명토록 푸르른 가을 하늘빛! 위령성월이 지금임은 아마도 그런 뜻일까? 또한 그 끝에 대림절이 시작됨도 그런 뜻일까!
이 계절 모든 감각을 잠재우고 침묵을 지니고서 ‘지금 이곳’에 멈추어 서 보도록 하자. 참된 신앙은 뜨거움 없이도 달아오르고, 보이지 않아도 있음을 알고, 듣거나 말하지 않아도 대화의 깊음에 잠겨들고, 어두운 밤에서도 빛을 믿는 곧 ‘온유한 빛’이다. 그렇게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기 밖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대희년을 앞두고서 맞는 대림절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2000년대를 앞둔 지금이야말로 ‘큰 대림절’. 모두가 그분의 새로운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있어야 할 뜻 깊은 순간이다. 하지만 진정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 삶 어디에 그분이 강생할 자리가 있을까.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마태 11,7~8)” 진정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구하러 그분께로 가고 진리에 매달리는 것일까?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 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며 노는 것과 같다(마태 11,17).”는 주님의 말씀처럼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분열된 자아로 자기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자신들. 이 시기야말로 내면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는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IMF 경제위기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이 캄캄한 땅에 사는 이들에게, 참으로 인간실종의 시대, 어둠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 어둠에 맞서 두려움 없이 ‘사람의 빛’을 증거해야 한다. 따스한 눈길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계절이 되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그러하고 하늘 위의 그분 역시 그러하다. 사랑과 기도! 기도와 사랑!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죽음에 이를 것인가. 이 위령성월과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절을 온전히 자신을 새롭게 하여 준비하면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도록 하자.
● 평화신문 무지개광장 작은 목소리 제504호 199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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