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을 앞두고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 때 악마가 그분께 유혹한 것이 다름 아닌 기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곧 돌을 빵으로 바꾸는 기적,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는 기적 등등이었습니다.
그분은 철저하고도 단호하게 그 모든 것을 거부하시고 끝내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며 헛된 짓거리를 쫓아버리셨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 중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시고 난 뒤 우루루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여기에서의 ‘썩어 없어질 양식’이 기적을 상징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생활을 마치시는 순간인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비록 피땀을 흘리시는 고통을 겪으실지언정 당신에게 맡겨진 잔을 치우는 기적을 요구하시지 않으셨고, 잠시 후 체포당하실 때에도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며 당장에 열 두 군단도 넘는 천사를 보내’ 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아셨지만 역시 그런 기적적인 삶을 거부하셨고, 무엇보다 갈바리아 산상 십자가 위에서 군중들이 머리를 흔들며 ‘하하,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 와 네 목숨이나 건져 보아라.’ 하며 모욕할 때도 다시금 뛰어내리는 기적을 거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처럼 고통이든 시련이든 기쁨이든 도체 삶의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여줄 것을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거기에 참된 구원의 길이 있음을 드러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흔히 기적이니 뭐니 하는 특별한 것, 초(超, super)로 시작되는 모든 것에 맛들이지 마십시오.
삶은 결코 특별한 것도, 超***的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공부엔 왕도가 없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은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면서도 나이 서른이 되실 때까지 이스라엘 땅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 나자렛 땅에서 그야말로 일상 속에서 가장 평범하게 사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케노시스(필립 2,6-8)는 제가 볼 때 단순히 베들레헴 마굿간에서의 탄생이나 골고타 십자가상에서의 죽음만이 아니라 오히려 나자렛에서의 30년 삶 거기에서 더욱 큰 의미실현이 있습니다.
거기엔 그 어떤 기적도, 특별한 것도, 소위 초(超, super)로 시작되는 그 어떤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소위 그분의 어린 시절을 숱한 기적 사건들로 점철시켜 놓았다는 ‘도마 복음서’ 같은 것들이 결국엔 정경(正經)으로 올림 받지 못한 까닭이 어쩌면 그런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 되신 것은 그분이 슈퍼맨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기 때문에, 다시 말해 똑같은 사람이시면서도 참 인간의 삶을 지극한 사랑으로 온전히 사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의 근본에 서십시오.
믿음의 뿌리를 잡으십시오.
참으로 무슨 특별한 것, 초(超, super)로 시작되는 그 모든 것들은 우선은 대개, 아니 ‘백은 백’ 거짓이기 십상이고 무엇보다 거기엔 분명코 그 어떤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아니면 교묘하게 이면적으로 개입되어 있을 것입니다.
성숙된 신앙을 지니십시오.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20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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