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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 정중규

정중규 2010. 1. 31. 04:06

서울특별시 월간 점자 서울사랑 / 2002년 10월호

 

칼럼 : 장애인에게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정중규 시인


글을 부탁 받고 글을 쓰려니 우선 마음이 편치 못했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의 삶에 있어 문화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도대체 장애인들에게 문화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장애인들의 삶이 아직도 생존권적 차원에서만 급급하고 있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문화 향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자칫 현실을 외면한 뜬구름 잡는 내용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이 결국 문화를 근간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니,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역시 문화적 삶의 확보를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문화의 향기

문화의 향기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아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 무엇을 바로 우리는 문화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화에의 향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누려야 할 기본권인 것이다. 곧 추운 날 둘레를 따스하게 덥혀 주는 화톳불처럼 문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바탕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문화적 혜택에서 장애인들이 철저히 소외받고 있다. 일반인 위주로 되어 있는 사회의 법과 제도,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와 닿는 편의시설의 미비 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접근이 아주 힘든 실정이다. 이처럼 사회가 지닌 장애들로 인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밑바닥으로 밀려나게 됨은 당연하다.

 

교육철학자 매슬로우(A. H.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와 안전, 소속과 사랑, 존중과 자아실현의 단계로 나누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제까지의 복지가 생리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수준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복지가 지향해야할 바는 소속과 사랑,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미국장애인법(ADA)은 생존권적 복지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는 차별금지의 차원에서 장애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문화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여성(Female)·감성(Feeling)·가상(Fiction)의 3F의 정보화 시대는 다름 아닌 문화의 시대이다. 그 점이 우리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지평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데, 예를 들어 계단이 없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 등을 생각해보면 장애인들이 이제는 더 이상 문화적 차별을 받거나 소외되지 않을 그런 사회의 바탕이 마련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에게는 아직 이런 것이 요원하기만 하고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의 정보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건사회연구원의 2000년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컴퓨터를 보유한 장애인은 11.0%로 당시 국내 컴퓨터 보급률인 66%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6.9%인 장애인 인터넷 이용률은 전체 이용률 44.7%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정보인프라의 구축에서부터 나타나는 장애인과 일반인간의 정보격차는 정보화 사회의 급변성으로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바로 이런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는 장애인복지와 특히 문화정책의 기획과 결정이나 시행과정에는 반드시 그 주체요 대상인 장애인들이 참여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자리매김되기 위해선 법과 제도와 같은 구조적 모순이 개선되어 자아실현과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사회조건들인 의료·재활·교육·직업·문화생활의 터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도시 전반의 편의시설 확보는 장애인의 사회접근권과 사회통합을 위해, 더 나아가 그 지역의 문화수준과 도시공간의 인간화 실현의 차원에서 시급한 실천과제이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문화적 혜택을 입어야 할 소비적 향유자인 동시에 문화의 창조자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에 공동체 문화를 뿌리내리는데도 장애인들이 한 몫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로서, 인간은 문화를 매개체로 한 심정적인 만남을 통해 인간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만 일어나는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있기에,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허무는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의 과정은 우선적으로 문화의 옷을 입고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은 병든 사회의 자화상이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회는 불행하다라는 말이 있다. 소수를 위한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것은 건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한 기본 요건이다. 거기에다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가 소수자의 보호에 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야말로 인간적 존엄성을 높은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진정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문화적 향유에 있어서조차 장애인들이 이렇게 소외된다면 우리가 참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소수자 배려야말로 참된 민주주의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이 편한 마음으로 사회 속으로 나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며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그야말로 장애가 장애 되지 않는 사회가 될 때 이 사회의 인간화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가 깨어나야 하고 장애인들이 깨어나야 한다.

 

이 가을, 우리 장애인 모두가 문화의 화톳불 가에 모든 이와 더불어 앉아 오붓한 행복감을 느끼며 문화의 향기에 취하는 그런 아름다운 꿈을 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