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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살려내라! 깍깍 - 정중규

정중규 2010. 1. 31. 03:23

우리 친구 살려내라! 깍깍

 

 

나의 정원엔 신화 속의 우주목(宇宙木) 같이 하늘로 솟아 있는 오래된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다. 뒷산에서 날아오는 갖가지 산새들과 특히 수다스런 까치 떼로 온종일 소란스럽다. 마침 오늘 아침 그 까치 한 마리를 우리 집 고양이가 나무 위로 올라가 잽싸게 사냥하였다. 그런 비극을 눈앞에서 본 동료 까치들이 찢겨진 주검이 널브러져 있는 뜰 한 가운데를 낮게 날며 부리를 쫙쫙 벌리고서 토하는 처참한 울음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캇산드라의 비명이 그에 비할까! 더욱 놀라운 일은 한낮이 훨씬 지나고 해질녘쯤 되어 거의 스무 마리 정도의 까치 떼가 한꺼번에 몰려오더니 감나무와 대추나무, 장미나무와 무궁화나무 등에 삼삼오오로 모여 앉아 우리 고양이를 빙 둘러싼 채 다시금 시위 벌이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 친구 살려내라!”라고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가관!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하이 소프라노의 합창을 토해 내며 고양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더니 역시 한꺼번에 하늘로 솟구치며 뒷산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보면 흔히 인간만의 특성으로 내세우는 ‘사회성’이란 것이 생물계의 보편적 현상이 아닐까 싶어진다. 이른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과 같은 것이 생물계에 있음을 부인할 순 없지만, 공생공존의 메커니즘도 그에 견주어 손색없을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튼튼하고 확실히 끈끈하게 살아있기에 생태계가 이토록 유지되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만일 지구 생태계가 홉스식의 ‘만생물(萬生物)에 의한 만생물의 투쟁’으로만 오직 점철되어 있다면 곧 생지옥으로 변해 버리며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된 채 이 지구는 파멸의 화를 입진 않았을까!

 

물론 생물학자 요리후지 가츠히로의 ‘현명한 이기주의’라는 말처럼 그것이 무작정 다른 생물을 위함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이뤄진 것일지라도, 전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진 이러한 공존공생의 몸짓들이 지구 파멸의 시간을 끝없이 늦추도록 했으며, 끝내는 이 지구를 온갖 생물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푸른 별’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생명의 원리를 통찰할 때 현대 인류 앞에 산적한 글로벌한 문제들, 특히 환경문제의 해결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뿐만 아니라 그런 바탕 위에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을 상정할 때, 설사 그 사회가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공동체는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런 사회는 광신적인 바리사이파들이 주도하여 터무니없게도 무균질을 추구하는 위선적인 사회보단 훨씬 더 성숙되고 건전한 인간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장애인복지를 비롯한 모든 사회복지가 그러한 생명원리에 근거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이외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윤리란 또 무엇이 있는 것일까?

 

 

●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의 향기 2002년 신년호 통권93호 향기 있는 뜨락 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