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부르는 봄노래
무척이나 분주했던 지난여름의 날들이 불그레한 가을빛 치마폭으로 잦아들어가 이제 가을인가 싶더니 벌써 뜨락을 뒹구는 바람엔 스산한 겨울 내음 가득하다. 문득 삶을 멈추고 서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보니 아, 나의 뜰은 어느새 온통 생명의 텃밭이 되어 있었다. 거기엔 보랏빛으로 몸을 떠는 때늦은 꽃들이 속삭이듯 살랑이고, 커피 향으로 흩어지는 낙엽들을 헤집으며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떼의 부지런한 행렬이 잔뿌리처럼 지표 위에 흩어져 있다. 또는 개구쟁이 꼬마가 날름 내미는 조그맣고 빨간 혀처럼 귀여운 고추들이 탐스레 많이도 열려 있기도 하다.
대지가 지닌 무상성과 진정성! 계절의 거친 놀 앞에 대지는 생명의 빛깔만 바꿀 뿐 겨울도 결코 죽음의 계절이 아니다.
정원 한 구석 너른 바위에 모셔놓은 하얀 성모상 앞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앉아서 기도드린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찾아뵌 부모님께 느끼는 심정처럼 모든 게 그저 죄송하기만 하다. 언젠가 주보의 응송 묵상을 통해 발견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치않은 맛들을 여의었던 것이 뜻밖에도 얼마나 맛스러웠던지, 놓칠까 저어하던 것을 놓아버림마저 벌써 즐거웁더이다. 위없이 참된 맛 당신께서 그것들을 나에게서 몰아내시고 그 대신 들어오신 때문이오니 온갖 진미에서 더 맛스러우신 당신’이라는 고백이 심장을 마구 친다.
내 삶의 좌표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들 하는 불혹의 고비에서 나날이 겪는 이 어지럼증은 어인 까닭인가. 많은 것을 놓쳐버린 듯하다.
참으로 지녀야 할 것들은 어디다 내버린 것일까. 널브러진 낙엽들이야 봄 노는 거름이라도 되지만 팽 돌아버린 지나간 내 시계바늘은 어찌할 것인가. 뜰 위로 시나브로 쏟아져 쌓여 썩혀지는 낙엽들이 한데로 뿜는 한(恨)의 순도만큼이나 내 가슴은 처절한 안타까움에 젖어든다.
이제 계절이 한 겹씩 깊어 가면 내 가슴을 활짝 열고 그분의 손길을 부여잡고 삶의 진정성과 충실성의 오롯한 오솔길로 나아가고 싶다. 사랑의 빛줄기를 한 타래라도 부여잡고 싶다. 그리고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나목(裸木)처럼 온통 벌거벗고서 그분께 온몸으로 드리는 기도이고 싶다.
그렇게 뒤틀린 몸뚱이로 나날이 몸부림치며 하릴없이 꿈틀대다 보면 어느 순간 용트림하듯 푸르른 빛 노을 퍼진 하늘로 올라갈 것인가. 그러기에 하늘만큼의 무게로 눈동자를 찔러 오는 삶의 아픔 때문에 언어마저 더듬거리며 읊조리는 이 서툰 기도는 반드시 찾아올 봄을 향한 아련한 희망의 피맺힌 외침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여느 희망과는 다르다. 그것은 죽음마저도 훌쩍 건너가신 그분이 담보해주시는 희망이다.
우리의 고통에 의미와 가치가 있음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기에 신앙은 겨울에 부르는 봄노래, 십자가에서 발하는 부활의 빛이다.
겨울의 품속에서 맞게 되는 주님 공현대축일과 주님 세례축일은 우리가 겨울나무처럼 모든 걸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때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어느덧 나의 뜨락에 꽃망울 터지듯 아름 내려와 밤새워 뚝뚝 빛줄기를 떨구던 뭇별들도 잦아들고, 촛불마저 사그라지는 창틀마다엔 삼라만상의 사랑스런 실루엣이 향그레 되살아나고 있다. 이 새벽, 봄노래를 부르며 부활의 빛을 보고 있다.
● 천주교 광안교회 회보 장대골 제95호 2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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