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글 모음

정치판에 요구되는 교양주의(敎養主義) - 정중규

정중규 2010. 1. 31. 04:17

지금 우리 정치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교양주의(敎養主義)’이다. ‘유신정권’이나 ‘5공군사정권’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른바 민주화로 일궈낸 소위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그리고 다시 ‘참여정부’에서조차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 정치행태는 여전히 ‘목불인견(目不忍見)’, 참으로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이다. 이것이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그 의미였던가.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바로미터는 단순히 제도적 장치만도, 이른바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의식만도, 뛰어난 법정신만도 아니다. 더욱이 ‘세계화’니 ‘제2의 건국’이니 ‘개혁’이니 하는 듣기 좋은 국정지표만도 아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사탕(糖菓)처럼 즐겨 빨고 있는 술수나 책략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진정 ‘교양’이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론 ‘문화에 관한 광범한 지식을 쌓아 길러지는 마음의 윤택함’이요 ‘전문적 분야의 학문과 지식’이다. 사실이다. 그것은 인품과 뛰어난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 있는 인격에 비롯되는 예의 어린 문화적 행동이다.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예측가능의 상호신뢰의 텃밭이다. 다른 이들과 모든 걸 서로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공존공영의 공동체의식이요 그에 따르는 타협과 대화의 정신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원칙에 충실한 양보와 근본을 살려내는 아량이 있고, 무엇보다 삶을 풍부하게 하는 세련된 멋과 보는 이로 하여금 은연중에 미소 짓게 만드는 덕성 어린 여유가 있다. 이 여유야말로 민주주의를 참으로 꽃피우게 할 수 있는 ‘플러스 알파적 요소’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폴리스적 시민정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정치에 절대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시정잡배들 보다 더 예의가 없는 유치하고 저질스런 몰상식한 행동들, 마치 그것만이 정치의 모든 것인 양, 기만과 술수로만 점철되어 있는 정신분열증적인 예측난망의 불안정한 행동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부정과 부패의 사슬에서 도체 헤어날 줄 모르는 아집 어린 탐욕, 정치적 생존(무엇을 위한 생존인가)을 위한 패거리 같은 줄서기, 당파적 이익 앞에는 원칙과 지조마저도 헌신짝 내팽개치듯 하는 비겁함과 옹졸함, 깊이 없는 얕은 눈, 넓지 않는 좁은 가슴, 높지 않는 낮은 머리, 그들이 쫓는 것은 오직 맹목적인 패거리 정치요 당파적 독선주의, 그 안의 하릴없는 방황의 연속이다.

 

그들의 짓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정치에 대한 냉소마저 솟구칠 정도이고, 그냥 한심하여 한숨만 나온다. 서글픈 일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선량이라는 그들인데 그토록 교양 없고 파렴치한 속물들일 따름이니, 그런 그들이 하나로 모여 있으니 우리네 정치판이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사람이 홀로 갈 때 자기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고, 우러러 볼 때에 하늘이 부끄럽지 않고, 굽어 볼 때에 땅이 부끄럽지 않을 때 비로소 진실 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 모두가 그렇게 양심에 바로만 선다면 비로소 이 나라도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그 옛날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 신익희 선생 같은 고결하고도 넉넉한 인품이 그립기만 한 지금이다.

 

 

● 서울대교구 가톨릭굿뉴스 자유게시판 2004/7/9